큰바위얼굴 vs 크레이지호스

독립과 자유, 번영을 경축하는 독립기념일! 지난 1776년 7월4일 독립선언 이후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세계와 세계역사를 주도하고 있다.

문화, 정치, 경제와 과학 등 여러 방면에서 미국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독립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역사적인 성지’로의 여행은 어떨까?

매년 전세계에서 2백만명 이상이 찾는 마운틴 러시모어(Mt. Rushmore)는 사우스다코다 주 블랙힐스 산지에 위치한 산봉우리이다. 이곳이 역사적인 성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4인의 얼굴이 조각된 거대한 암벽이 있기 때문이다. ‘큰바위 얼굴’로 알려진 러시모어 국립공원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이상을 상징하고 미국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키우는 성지이다.

또한 이 곳은 오랜 세월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블랙 힐스(검은 언덕)’이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던 성지이다. 이곳에는 인디언 최대 승리로 기록되어 있는 전쟁 ‘리틀빅혼 전투’의 지휘자이며, 백인과의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설적인 전사 ‘타슈카 위트코’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암각상이 50여년에 걸쳐 제작되고 있다.


미국의 ‘서부개척사’를 뒤집으면 ‘인디언멸망사’가 나온다. 지금의 미국이 있게 한 ‘프론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모험과 용기, 그리고 인내를 의미하는 진취적인 이념이지만 인디언의 입장에서는 땅과 목숨을 앗아간 파괴적이고 탐욕스러운 이념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미국인들의 성지이면서 인디언의 성지인 러시모어이다.

위대한 4인의 대통령 암각상과 위대한 인디언 영웅 암각상은 불과 16마일 거리를 두고 새겨져 있다. 인디언의 혼과 미국역사의 자부심을 가슴에 담고 동시에 미국역사의 오만과 인종차별의 치부를 갈무리기에 러시모어는 더없이 훌륭한 곳이며 독립기념일을 맞이해 방문하기에 더없이 의미가 큰‘역사적 성지’이다.


▶미국역사의 자부심 - 대통령 얼굴 암각상(큰바위얼굴)

러시모어라는 명칭은 1885년 이 지역을 탐험한 뉴욕의 저명한 변호사 찰스 러시모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난해 경제전문지 ‘포츈’지가 선정한 ‘미국의 가장 위대한 100가지’에서 러시모어 산은 인터넷, 헌법, 야구에 이어 4위로 뽑혔다. 미국민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러시모어에는 조지워싱턴(1대), 토마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의 대통령의 얼굴상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의 미국이 있기까지 훌륭한 업적을 쌓은 대통령이 적지 않지만 이들 4인이 선정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 각각은 미국의 건국, 성장, 보존, 발전을 상징한다고 한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치뤄낸 미국의 초대대통령이고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오늘날 루이지애나의 광활한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임으로써 영토확장과 함께 대륙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링컨은 남북전쟁을 통해 미합중국의 연방제를 공고히 했으며 루스벨트는 파나마 운하건설 등을 통해 미국의 세력을 외부로 확장시키면서 미국을 세계의 중심에 서게 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당대 최고의 문인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민주주의의 사상과 이론을 담은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기념일에 함께 하고픈 역사적 인물 1위로 꼽히는 미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존 F.케네디가 49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연회에서 “이렇게 탁월한 재능의 지성들이 모인 것은 백악관 역사상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토마스 제퍼슨이 이곳에서 홀로 앉아 식사했을 때는 제외하고 말입니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비단 제퍼슨 뿐 아니라 러시모어산 암각상의 주인공들 모두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큰 얼굴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4명의 대통령 얼굴상 옆에 한 사람을 더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본인의 얼굴이 그곳에 새겨지는 꿈을 미국의 대통령에게 심어줌으로써 권력의 달콤함에 취하거나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블랙힐스 산지의 한 자락인 러시모어 산 꼭대기에 조각된 대통령 얼굴상은 각각의 크기가 60피트에 이른다. 코가 무려 20피트, 눈은 10피트나 한다. 루스벨트 상의 수염길이는 20피트이며, 눈동자 밑은 열명이 앉을 만큼의 크기이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바위의 중량만 해도 약 2억톤에 달했다고 한다. 1927년 첫 발파를 시작해 1941년 완공까지 14년이나 걸렸다.

이 작업에서 총지휘자인 미국 조각가 거츤 보글럼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얼굴을 하늘 가까이 높이 새기자. 그 기록은 바람과 비만이 닳게 할 뿐,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금 조달이 힘들어 공사를 여러 번 중단하기도 했으며, 1941년 3월 보글럼이 숨졌고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같은 해 10월 작업을 마무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식 제막식은 50년 뒤 열렸다.


▶인디언의 혼 - 타슈카 위트코 기마 암각상(크레이지 호스)

인디언들은 블랙힐스 산지를 세계의 중심지, 신이 사는 영산이 모여있고 전사들이 위대한 정령과 만나는 성지로 여겼다고 한다. 백인이 이 지역에 들어설 즈음, 미국정부의 인디언보호구역 설정 및 강제이주 정책에 맞서 조상의 신성한 땅을 지켜내고자 위대한 인디언 전사 ‘타슈카 위트코’가 태어났다. 그는 ‘크레이지 호스(성난 말)’란 별칭으로 불렸으며 꺾이지 않는 투지를 보여준 ‘인디언의 혼’으로 기억된다.

프론티어 정신에 입각한 영토확장과정에서 북아메리카 전역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과의 무수한 전투가 있었다. 미국정부는 백인들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68년 블랙힐스 일대를 인디언 땅으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인디언의 허락 없이 백인의 출입을 금하는 곳’으로 규정하는 대신 인디언들도 서부로 가는 백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애석하게도 블랙힐스 일대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에 이 조약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졌다. 또다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타슈카 위트코는 블랙힐스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오랜 전투는 인디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결국 타슈카 위트코는 끈질긴 추격에서 부족민을 보호하기 위해 항복하게 되고 ‘블랙 힐스 양도 조약문’에 서명하게 된다. ‘타슈카 위트코가 항복한다면 그의 부족민에게 안전한 거주지를 준다는 약속’에 따른 항복이었으나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고 그는 처형되게 된다.

높이 563피트, 길이 641피트의 타슈카 위트코 기마 암각상은 현재 작업진행중이다. 지난 1998년 얼굴부분이 완료되어 제막되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이 암각상이 완성된다면 22층 빌딩높이가 되고 손가락 하나가 버스 크기이며 높이가 자유의 여신상 두 배나 될 것이라 한다.

1948년 착공돼 반세기가 넘었지만 이제 겨우 얼굴만 완성된 것은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의 의지 때문이다. 러시모어 대통령 얼굴상 작업에도 잠시 참여했던 그는 단돈 174불만 가진 채 무모하게 기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디언 탄압의 역사를 반성하겠다는 의미로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연방정부의 제안을 거절한 채 일반시민들의 기부금과 입장료, 화강암 조각 세공품 판매 수익만으로 경비를 충당했다. 인디언 영웅의 조각상을 미국정부의 돈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그의 의지 때문에 완성까지 앞으로도 약 100년 정도의 시간이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1982년 죽자 유업을 이어받아 부인과 자녀, 손자들이 대를 이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타슈카 위트코는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리틀빅혼 전투’에서 남북전쟁 불패 신화의 주인공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끄는 제7기병대를 전멸시킨 영웅이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인디언들의 신성한 땅 블랙 힐스, 수많은 인디언들이 피를 흘린 블랙 힐스에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졌다. 인디언 한 사람의 목에 수백 불의 포상금을 내걸었던 링컨의 얼굴이 조각됐고 이를 설계하고 지휘한 조각가 거츤 보글럼은 공교롭게도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 출신이다.

심지어 크레이지 호스(타슈카 위트코) 기념관 아래 마을 이름은 무차별적인 인디언 학살로 악명이 높았던 커스터 장군을 이름을 딴 ‘커스터’이다. 미국의 자랑거리인 장거리 미사일 ‘토마호크’는 타슈카 위트코가 죽는 날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손도끼의 이름이었다.

조각가는 대통령의 얼굴상을 작업했다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39년 인디언 수우(Sioux)족의 추장 헨리 스탠딩 베어의 편지를 받은 후 이 같은 마음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편지의 내용은“우리 추장들은 백인에 대한 소망이 있다. 우리도 백인처럼 위대한 영웅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한다”이다.